[이 아침에] 당뇨는 ‘슬픈’ 병이다
“안녕하세요. XXX 내과입니다. 최숙희님의 예약 날짜는 06/15/2022 @10:30 AM입니다. 재진 환자분들은 화상 진료도 가능하오니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치의로부터 정기검진 예약 알림 문자가 왔다. 혈당수치가 제일 걱정이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못 한 학생처럼 병원 가기가 두렵다. 나는 끼니는 건너뛰어도 과일을 끊지 못하는 과일 귀신이다. 하루 한 주먹의 과일만 먹으라는 당뇨식 지침을 번번이 지키지 못한다. 그동안 게을리한 운동과 엉터리 식이요법을 반성했다. 학창시절 벼락치기 공부는 운이 좋으면 효과가 있지만 몸은 거짓말을 안 할 것이다. 며칠 조심한다고 혈당수치가 내려갈 리 없겠지만 어쨌든 예약을 뒤로 미루었다. 남의 큰 상처보다 제 손톱 밑 가시가 쓰리고 아프듯이 당뇨 판정을 받고 암이라도 생긴 듯 충격이 컸다. 당뇨, 혈압, 아무것도 없으신 부모님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나 아이들에게 당뇨 가족력을 물려주게 되었다. 무절제하게 살아온 삶을 들키나 싶어 주변에 알리지도 못했다. 남편은 B형 간염 보균자로 독한 간염약을 먹는다. 다른 약을 추가하기 싫다며 체중을 줄이고 초인적인 노력으로 경계 선상의 당뇨, 혈압, 고지혈증을 모두 정상범위로 바꾸었다. 누구보다 남편에게 부끄러웠다. 당뇨는 완치가 없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으로 합병증이 무섭지만 식이요법 없이 약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아니 알면서도 먹는 즐거움 포기가 힘들어 무시했다. 한 알 먹던 약을 두 알 먹으니, 정신이 번쩍 들고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었다.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이 가장 현명할 터이다. 할 줄 아는 운동이 수영과 걷기밖에 없으니 우선 동네 공원 걷기부터 시작했다. 알아보니 집 주변에 바닷바람 쐬면서 즐길 수 있는 경치 좋은 산길이 많다. 일주일에 5일, 하루 만 보 이상 걷기를 목표로 했다. 서로 긍정의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다. 나이 먹어가며 쌓인 삶의 지혜도 나누고 우여곡절 많았던 이민 살이 에피소드도 쏟아낸다. 저 혼자 큰 듯 무심한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을 수다로 풀다 보면 당뇨에 제일 해롭다는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못 고치는 병은 없고 습관만 있다지. 당뇨 덕분에 매일 친구들을 만나며 찐 우정도 쌓는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피크림 도넛 회사의 광고를 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유가(가주는 갤런당 6달러를 훌쩍 넘었다)와 인플레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매주 수요일 12개 도넛을 전국 가스 평균값에 매치시켜 5.01달러에 판단다. 탄수화물을 제한하느라 기울였던 노력이 한순간 허사가 될 뻔했다. 쌉쌀한 커피와 곁들여 먹으면 최고인 쫄깃한 식감의 달콤한 도넛을 눈으로만 먹어야 하니, 당뇨는 슬픈 병이다. 내가 먹은 것이 지금의 내 몸을 만들었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이 당뇨를 주었다. 하지만 당뇨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을 통해 더 건강하게 살 수도 있다는 통계도 있다니 위로가 된다.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가족을 위한 사랑의 실천, 오늘도 운동화 줄을 질끈 매고 집을 나선다.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당뇨 당뇨 가족력 당뇨 혈압 당뇨식 지침